요즘 출퇴근을 택시로 하다보니 밥값보다 교통비가 훨씬 더 많이 나가고 있다. 아침이면 몸이 무겁고, 저녁이면 마음이 무거운 직장생활 4년차. 대학시절엔 과연 내가 직장생활 X년차, 라고 말할 시간이 오기나 할까 싶었는데, 허허, 세월이 참. 여느 때처럼 폭풍같은 하루를 보내고 건물을 나오니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길래 어김없이 택시를 탔다.

올해 1월부터 어쩔 수 없는 회사 상황 때문에 나의 역량에 비해 업무의 질이 어려워지고 양도 많아졌다. 더불어 나의 짜증과 신경질과 한숨의 질과 양도 달라졌는데, 이 모든 화살이 우리 브랜드를 도와주는 에이전시 관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어 늘 마음이 무겁다. 한편으로는 이들 없이는 아무것도 안돌아가리라는 생각에 무한한 감사와 신뢰가 솟아나다가도, 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내가 원치 않는 방향의 시안을 제시할 땐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나기 마련.
함께 일하는 대행사 관계자 중 나와 실무를 늘 같이 하는 친구가 있다. 나이도 같고 경력도 비슷해서인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나의 성격 탓과) 업무적인 관계 때문에, 그리고 약간의 변명을 덧붙여 현재 내가 안고 있는 이 과중한 스트레스 때문에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는 안타까운 관계에 있는 광고대행사 AE다. 회사도 가까워 종종 같이 술도 먹고 이런저런 고민도 늘어놓으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아쉽다. 마케터로서 언젠가부터 브랜드가 가장 돋보이는, 명확하고 전달력 있는 메세지나 디자인을 늘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데, 이 부분이 한순간 매끄럽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그간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면, 조직에서의 관계는 항상 어렵고, 그 중에서도 가장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유지하는 것 같다. 오늘만큼은 그렇게 짜증내지 않아도 되었는데 퇴근길에 어찌나 내내 마음이 안좋던지. 고민끝에 카톡을 보냈는데, 사실 한 번 참으면 될 것을 괜히 어른스럽지 못하게 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잘 챙기지 못한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대학교 2, 3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이 영화의 홍보는 뉴욕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든가, 패션 업계의 화려함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볼때도, 그리고 보고 나서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나는 업무와 사람에 치이는 직장인이 되었고, 커리어와 인생의 큰 그림을 고민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 영화는 더 이상 단순히 "악마"와 "프라다"를 조명하는 하이틴 패션 드라마가 아니었다. 이 영화에 담긴 철학을 나의 선배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허허.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주름과 뱃살만 느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앞이 뒤처럼, 뒤가 앞처럼 보이기도 하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는 게 바로 세월이 주는 미학이겠지. 고등학생이 장밋빛 대학생활을 꿈꾸고, 청년들이 신나는 직장생활을 그리는 건 바로 우리가 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나는 삶의 어떤 긍정적 척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후회없는 나이듦이란 어떤 것일까.
인생에는 속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일하며 사랑하며 이렇게 따뜻한 봄날의 바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겠다. 업무에 찌든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고 모든 짜증과 허탈감이 변명이 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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